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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통암

    오수에서 삼계면 소재지 방향으로 가다가 두월리 방향으로 1Km쯤 가다가 다시 오른쪽 시멘트 길을 타고 1Km 정도를 더 들어가면 쌀산이라 불리는 산 위에 도통암이라 불리는 조그마한 암자가 하나 있다. 산 위에 있는 암자에 이르면 보통 절 보다는 작은 모습의 건물이 눈에 보이며 건물 뒤 큰 바위에는 않아 있는 모습의 불상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바위 옆면에도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담쟁이 넝쿨과 오랜 세월만큼 바위에 낀 이끼 때문에 정확히는 알아 볼 수 없다.

    도통암

    이 암자는 고려시대에 도통사라는 절이 있었던 자리에 다시 지은
    건물로 여러 스님들께서 이 곳에서 수양을 하셨다 한다.
    특히 40여년 전 청화 큰 스님께서도 이 곳에서 수양을 하셨다고
    한다. 현재 암자에는 50여년 전부터 이 곳을 지키시던
    여 스님이 혼자서 생활하고 계신다.
    스님 이 스님은 평생 50여 명의 자식을 이 곳에서 키워냈다고 하신다. 암자에 찾아간 날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그 곳에는 무공해 채소들과 고구마가 가득했다.
    모두 이번 주말 찾아올 자식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즐겁게 일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애석불좌상1

    쌀바위와 피바위(도통암 전설)

    삼계면에 옛날 (고려중기 이후로 추정)부터 도통사라는 절이 있어 스님들이 도를 닦았다 한다. 이 절에는 오른쪽으로 사람의 키로 두어 길이가 넘는 깎아지른 듯한 암석이 있고 그 아래에는 맑은 샘이 있어 7,8월 삼복더위에도 이 샘물을 한 모금만 마셔도 더위가 싹 가신다고 한다. 이 샘이 있는 바위에 직경 3cm 정도 되는 구멍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서는 하루 분의 식량이 매일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산의 이름을 미산이라 전래되었고 절 이름도 도통사보다는 米山寺라고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전설은 바위의 작은 구멍에서 나오는 쌀에서부터 연유된다.
    도통사에는 주지스님 한 분이 상좌 한 사람을 데리고 도를 닦고 있었다. 스님과 상좌는 하루 새끼의 식량을 이 구멍에서 얻을 수 있어 집집마다 시주를 다니지 않고서도 살 수 있었으며 완전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수도하는데 만 전념할 수 있었다. 조용하기만 하던 이 절에 어느 날 방랑도사 한 분이 찾아왔다.
    그러나 상좌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돌에서 나오는 쌀은 두 사람뿐인데 밥을 먹어야 할 사람은 세 사람이 되니 상좌는 지체가 낮은 자신의 밥이 적어져 짜증이 났다.
    상좌는 이 도사를 쫓아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쌀도 더 나오지 않자 바가지를 들고 바위 밑에 가서 정한수를 떠놓고 한 사람의 식구가 늘었으니 쌀을 더 나오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다. 그러나 쌀은 역시 두 사람분만 나오고 뚝 끊겼다. 상좌는 부처님이 원망스럽고 돌구멍이 미웁기까지하여 그만 부지깽이로 구멍을 후벼 버렸다. 이런 후로 이 돌구멍에서는 쌀은 나오지 않고 대신 하얀 쌀뜨물 만이 나왔다고 한다.(지금도 비가 오면 쌀뜨물 같은 물이 나온다고 함)할 수 없이 상좌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 저집 이 마을 저 마을로 시주를 나서는 고행 길에 들어섰다. 특히 상좌는 절 앞마을(지금의 두월리 상지동)에 있는 부잣집을 자주 찾아 시주를 받았으며 이 부잣집 식구들 중 가장 아름답고 마음씨 또한 착하기로 소문난 순이는 상좌를 측은하게 여겨 쌀을 듬뿍 떠주었다.

    마애석불좌상2 이러는 동안 상좌와 순이는 서로를 좋아하기에 이르렀으며 둘은 인적이 없는 곳에서 만나 사모의 정을 나누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이 총총히 빛나던 맑은 하늘에 난데없이 먹구름이 몰리고 천둥과 번개가 번쩍이더니 뒷벽에 서 있던 암석이 굉음을 내며 부등켜 안고 있는 두 사람을 덮쳤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바위에는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모습이 하얗게 나타나 있어 중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져 내려오고 있다. 두 사람을 덮쳐버린 바위에서는 지금도 비가 오면 붉은 물이 흐르고 있어 피바위라고도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