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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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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각골

    먼 옛날에 삼계면 왕지골에 서로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정씨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슬하에 아들을 두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날마다 부처님과 신령님께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정성껏 빌었다.
    이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어느 날 허름한 차림의 나그네 한 사람이 정씨 집을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기를 원하니 마음씨 착한 정씨 부부는 이를 허락하였다. 그런데 한 밤중에 나그네가 깊이 잠든 정씨 부부를 깨워 달걀 한 개를 달라고 사정하기에 상한 달걀을 한 개 내주었더니 나그네는 그 길로 왕지골에 갔다가 바로 돌아오므로 이번에는 상하지 않은 달걀을 주고서 나그네의 뒤를 밟았다. 달걀을 손에 쥔 나그네가 왕지골에 달걀을 묻으니 바로 닭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는 땅을 치며 “이 자리가 바로 내가 찾는 명당 중에 명당이로다.”하며 기뻐하다가 어디론지 가버렸다. 정씨는 그 자리를 유심히 보아 두었다가 이 곳에 몰래 자기 아버지 장사를 지내버렸다. 장사를 지낸 바로 그 날밤 꿈에 백발을 한 노인이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아들을 주겠노라”하였다.
    이후 정씨 부인에게 태기가 있어 10달 만에 아들을 낳으니 가슴 밑에 날개가 달린 아들이었다.
    부부는 걱정이 되면서도 열심히 정성 들여 기르기를 10년 어느 날 한 도승이 나타나 “나에게 아들을 3년만 맡기라. 콩 한말과 팥 한말을 같이 주되 잊지 말고 3년을 꼭 기다리라. 그러면 대장군이 되리라”하며 아들을 데리고 가기에 정씨는 살며시 뒤 쫓아가보니 이 도사는 왕지골 바로 밑으로 내려가 임금 왕(王)자가 새겨진 돌을 손으로 치니 바위가 갈라지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에 정씨의 부인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 앞 벽 옆에 소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매일매일 물을 주며 3년의 날짜를 꼽기 시작하였다. 날이 가고 해가 가 어언 3년이 지났다고 생각한 정씨 부인은 아들이 나타나지 않자 안타깝고 초조한 나머지 석수장이를 데려다 아들을 구해야 된다고 바위를 깨기 시작한지 며칠.
    마침내 바위가 갈라지면서 핏물이 쏟아져 나오더니 내를 이루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콩은 사람이 되고 팥은 말이 되여 무술을 익히는 중이었다. 아들은 울부짖으면서 “7일 왜 7일만 더 참지 못하였습니까?”하는 말을 남기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 버렸다. 정씨 부부는 아들을 기다리는 조급한 마음에서 날짜를 잘못 헤아려 아들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한다.

    석불입상

    학정리 석불입상

    전설 첫번째

    지금은 상반신 석불만 남아 있어 자취를 찾을 수 없지만 옛날에 학정리와 덕치면 가곡리를 경계하는 원통산(圓痛山)기슭에 수학사라는 절이 있었다. 수학사에 있던 석불은 좌대와 등석이 따로 있는데 한 사람이 그 돌을 깨서 망주석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그 집안 식구들 중 4사람이 한꺼번에 횡사함으로써 부처의 영험을 맛보았다고 전하고 있다.






    전설 두번째

    어느 농부가 들에 나와 소에게 풀을 뜯기는데 갑자기 소가 날뛰면서 달아나자 소를 잡기 위하여 온 산과 들을 뛰어다녔으나 잡지 못하자 화가 잔뜩 난 농부는 소를 향하여 돌을 던졌는데 빗나간 돌이 그만 석불의 코를 맞췄다. 그 바람에 석불의 코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고 농부는 그날 밤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 주민들은 석불의 영험한 기운이 내린 벌이라 하여 석불에 대한 외경심이 높아져 오늘까지도 석불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